우리역사 과학기행
문중양 지음
초판 1쇄
펴낸날 2006년 4월
20일
초판 2쇄
펴낸날 2006년 5월 1일
펴낸곳 도서출판 동아시아
01. 한국인의 하늘과 땅, 그리고 세계
첨성대: 천문을 묻는 활동뿐만 아니라
불교적, 토속 신앙적 염원을 담은 제단 또는 조영물의 역할 또한 하였다.
석굴암: 우리가 현재 말하는 ‘석굴암’이라는 말은 승방을 의미하므로 적합하지 않으며 석굴이라고 해야
한다. 신라 석공들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연과 숨쉬게 석굴을 지었으나,
일제 때의 잘못된 보수 공사, 군사 혁명 정권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서 결로 현상이 일어났다. 이들은 예술적인 가치는 알아보았으나, 과학적인 가치는 못 알아 봤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고분벽화: <천상열차부야지도>와 ‘기토라 천문도’, 그리고
고구려 고분의 천장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을 통해서 고구려인들이 중국과는 별개의 천문 관측 활동과 천문관의 전통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프로젝트로 인해 고구려의 문화와 역사를 중국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시대의 ‘천문’은 천문학(Astronomy)의
의미뿐 아니라 점성술(Astrology)의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조선 왕조가 새로이 개창된 지 불과 4년 만에 <찬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것은 요임금과 순임금이 펼쳤던
모범적인 정치를 펴나갈 것임을 만 천하에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띠었다. 즉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시대 천문학의 표준이었고, 조선 왕조의 권위를 상직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조선의 세계 지도: 지도란 정확한 지리 정보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 이유는 지도 속에 그 시대의 세계관이 곁들어있기 때문이다.
02. 제왕학으로서의 과학 기술
금속 활자: ‘직지심체요절’의
발굴과 소개는 고려 금속 활자의 실체를 온 세계인들에게 보여 준 쾌거였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금속
활자는 서적의 대중화와 지식의 확산 등을 통한 한국 중세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유럽 사회에서 지녔던 역사적 역할이 중세 사회의 극복과 자본주의적 서적의 대량 생산이었다면,
한국의 금속 활자는 조선 왕조의 안정적 정착과 유교 문화의 형성이라는 시대적 역할과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의 요구에 부흥해 만들어진 기술인 것이다.
간의와 일성정시의: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자존심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한 세종의 노력에 만들어진 관측 기구들이다.
앙부일구: 조선의 앙부일구는 중국의 앙의의 획기적인 기능이었던 일월식
관측 기능이 빠지고 시각을 측정하는 해시계 기능만을 살려 소규모로 만든 간편한 기구였다. 앙의는 황제의
권위를 드높이는 천문기구인 반면, 앙부일구는 백성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 민본정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훈민정음: 훈민정음이란 우리말의 표기 체계인 한글의 본래 이름이자 책이름이기도
하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들 중에서 창제 과정과 그 원리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훈민정음
문자의 기원설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현재로써는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문자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가장 우세하다.
3.
나라를 지키는 과학기술
수표와 수표교: 세종 때 만들어진 측우기는 유럽 최초인 카스텔리(Castelli)의 우량계(1639년 발명)보다 무려 198년이나 앞서는 세계 최고의 정량적 우량계로 매우 독창적인
발명이었다. 이에 비해 하천 수위계인 수표는 중국에 이미 수칙이라는 수위계가 발명되어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것을 모델로 하면서도 100배나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수표로 변형 개발해 제작했다.
신기전과 화차: 화차의 등장은 1370년대
최무선의 독자적인 화약 개발이 이루어 진 이후, 태종대와 세종대의 비약적인 기술 진보를 통해 중국식
화포를 조선식으로 개량하여 신식 무기로 재무장하는 등 100 년 동안 이루어진 화약 무기 개발 노력의
결과물이다.
거북선: 막힌 공간에 무기들을 장착한 채 지휘를 하면서 움직여야 했기에
기동성과 위력 면에서 판옥선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그러나 돌격선으로서 일본 수군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 (임진왜란 동안 3~4척의 거북선만을
제작했다.)
화성: 중국의 대규모 성들이 보통
10m 높이를 넘어서는 데 비해 화성은 4m이다. 이는
화양 병기 발달사의 흐름과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화성은 화포를 이용한 전투 방식의 형태로 지어진 성이다.
4.
전통과 서양의 만남
천하도: 17세기 이후 서양식 세계 지도를 처음 본 조선의 사대부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 중심의 직방 세계에서 드넓은 세계로의 확장, 또 구형의 지구 모양 등은 당시 사대부들에게 있어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기이한 모습의 천하도가 나왔다. 이는 전통 과학의 소멸과
근대 과학의 등장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양식 해시계: 조선 후기에는 서양식 해시계들이 조선 초기의 해시계들을 대체했다.
서양: 아스트로라베 =>
중국: 간평의 평혼의 => 조선: 해시계(간평일구, 혼개일구)
혼천시계: 시간의 기능과 하늘의 형상을 보여주는 기능을 가진 시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관상수시를 수행하는 제왕학의 첫 번째 실천이었다. (서양의 문물 유입, 약화되는 왕권 등으로 새로이 재무장해야 하는
역사적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혼천시계는 세종대의 혼천의, 자격루
등 기계 시계 제작 전통을 훌륭히 계승했으며 시보 장치 부분이 결합된 발전된 형태였다.
혼천전도: 과학적 가치는 없으나 조선인에 의해 제작된 유일한 독창적인
천문도로서 전통 천문도와 서양식 천문도의 중요한 내용들이 녹아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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