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6, 2013
순교와 외교(타협)
* 이란 역사에서 과거 죽을 때 까지 싸워 순교한 종교 지도자와 타협한 종교 지도자가 있었음. 이 컬럼은 제목(순교와 타협 사이)을 통해 이란이 2가지 모델중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묻고 있음.
이스탄불 – 최근(these days) 중동은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빨리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터키의 수상 에르도안에게 물어보면 잘 알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신 오토만제국주의(터키는 과거 오토만 제국시 지중해 연안을 지배)가 “이웃 국가들과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신조를 추구(에르도안 총리가 추구)하면서, 터키의 지역적 영향력을 묘사하는 유행 문구였습니다.
Now there are zero neighbors without
problems. Syria is first
among them. Erdogan’s fulminations over the suppression of the Muslim
Brotherhood in Egypt and the
treatment of the Sunni opposition in Syria
have the air of the unbalanced outbursts of a lonely man whose moderate
Islamism has morphed into an immoderate fury.
그러나 지금은 문제가 없는 이웃국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시리아가 문제 국가들 중 첫 번째입니다.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압제(무슬림 형제단은 수니파로서 이집트내 여타 종파 탄압)와 시리아 정부(시아파의 알라위파)의 수니 반대파 대우(나쁜 대우)에 대한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분노는 외로운 남자의 비균형적 폭발을 반영합니다. 그 외로 남자의 중도성향 이슬람주의가 과도한 분노로 변하고 있습니다.
Perhaps Erdogan, whose indignation is not
groundless, would benefit from the counsel of a neighbor, Iran . Its fast change has involved the sudden
embrace of “heroic
flexibility.”
에르도안 터키 총리의 분개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며, 에르도안 총리는 아마 이웃 국가인 이란의 조언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이란의 신속한 변화는 “영웅적 유연성”의 갑작스런 수용을 포함합니다.
The phrase, used by the supreme leader,
Ayatollah Ali Khamenei, in a recent speech to the Islamic Revolutionary Guards
Corps, was buttressed at the United Nations by Iranian advocacy of “prudent
moderation.” These unlikely words were uttered by President Hassan Rouhani,
whose education in that stronghold of Enlightenment values, Scotland , appears to have had an impact.
이슬람 혁명 수비대 연설에서 최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종교지도자,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 보유)가 사용한 그 문구(영웅적 유연성)는 유엔에서 이란의 “신중한 중도주의” 지지에 의해 뒷받침되었습니다. 이런 믿기 힘든 말(영웅적 유연성)이 계몽주의 가치의 근거지인 스코틀랜드에서 받은 교육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로우하니 이란 대통령에 의해 언급되었습니다.
* 최근 로우하니 이란 대통령은 유엔을 방문, 유엔총회 연설을 하였으며,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는 등 미국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 작가는 이러한 이란의 변화는 ‘영웅적 유연성’으로 묘사함.
Or so it would seem. Sanity is in the
Iranian air after the loony lurches of the aberrant Mahmoud Ahmadinejad.
Rouhani and President Obama almost met in New
York , a near miss that by the standards of
Iranian-American estrangement over the past 34 years counts as a radical
rapprochement. Hope stirs, once again, for a U.S.
breakthrough with Iran of
Nixon-to-China proportions.
아니면 이것은 다음과 같아 보입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로우하니 이전 대통령으로 보수 강경파)의 일탈적인 이상한 휘청거림 이후에 현재 이란에는 온건한 기조가 있습니다. 로우하니 이란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뉴욕에서 만나서 지난 34년간의 이란-미국의 별거를 급진적 화해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거의 만들 뻔 했습니다. 다시 한번 미국은 이란과의 예상치 못한(닉슨-중국 사례, 냉전시 닉슨 대통령은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과 전격 수교함) 돌파구를 찾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But such is the volatility of the Middle
East today, and such the hall of mirrors in Tehran ,
that extreme caution is warranted. As the Iranians say, “Not everything round
is a walnut” — and not every form of “heroic flexibility” is an olive branch. Iran always operates on at least two tracks; to
do otherwise would be simplistic. Its Shiite religion permits, in some
circumstances, the embroidering of the truth for the protection of the faith, a
divinely sanctioned dissimulation. This is a land where straight talk and
virtue are not widely seen to overlap.
오늘날 중동의 유동성(변화 가능성)과 극단적인 신중함에 빠져 있는 테헤란의 거울 또한 갑작스런 변화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란 사람들이 “ 둥근 모든 것이 호두가 아니다”라고 말하듯이 모든 형태의 “영웅적 유연성”이 꼭 평화의 말(올리브 가지)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란은 항상 두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다른 방식대로 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란 시아파 종교는, 어떤 상황에서는,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사실의 위장, 즉 신성하고 절제된 위장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란에서는 직설적 말과 선행이 서로 양립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The two core Iranian tracks today are
evident. The first is Rouhani’s outreach, his rejection of extremism, his
conciliatory (and contested) comments
toward Jews, and his categorical statement that, “Nuclear weapons
and other weapons of mass destruction have no place in Iran’s security and
defense doctrine.”
오늘날 이란은 두 가지 핵심적인 길(방향)이 확실합니다. 첫 번째는 로우하니의 대외관계 활동, 이란내 극단주의자 거부, 유대인을 향한 화해적 언급, 그리고 “핵무기와 다른 대량 살상 무기는 이란의 안보와 국방교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단정적 언급입니다.
*
이전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 유대인 경멸 등 반대로 추진
The second is the heavy involvement of the
elite Revolutionary Guard Corps in defense of the Syrian despot, Bashar
al-Assad, and the multifaceted ongoing campaign of its Quds Force commander,
Qassim Suleimani, who summoned Hezbollah into Syria
and fights under the broad, often murderous banner of resistance to America , Israel
and the West.
이란의 두 번째 얼굴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알사드 시리아 폭군을 지키기 위해 깊게 개입하고, Quds 부대 지휘관인 슐리만이 헤즈볼라(극단주의자)를 시리아로 불러들이고, 미국, 이스라엘 및 서방에 대해 격렬히 저항하면서 시리아 사태에 다면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How Khamenei manages these two disparate
currents will have a decisive bearing on whether the current U.S.-Iranian
blandishments lead anywhere.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 두 가지의 이질적인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미국-이란 관계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
이란내 보수파(군부, 종교 성직자)와 개방파(로우하니 대통령)간 조화 문제
The supreme leader has two models from
Shiite lore at his disposal — the conciliation of the second Shiite imam,
Hassan ibn Ali, who chose peace over war after his father’s assassination in
661, or the heroic sacrifice of his younger brother, Hussein, who fought to the
death against impossible odds. Khamenei has called Hassan’s compromise
“history’s most glorious exercise of flexibility.” But it is Hussein’s defiant
martyrdom that has held greater sway in the 34-year history of the Islamic
Republic.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시아파의 구전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두 가지의 모델을 대입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아파 이맘(성직자)이자 661년 그의 아버지 암살 이후에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택한 하산 이븐 알리의 화해정신 모델, 혹은 불가능한 역경에 대항하여 죽을 때 까지 싸운 그의 어린 동생 후세인의 영웅적 희생 모델입니다. 하메네이는 하산의 화해 역사를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유연성”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후세인의 반항적인 순교가 지난 34년 동안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For now, Khamenei’s use of the phrase
“heroic flexibility” suggests he will give Rouhani’s conciliation quest a
chance — so long, of course, as Suleimani’s Plan B is there as a fallback. As
one religious scholar told the Tehran Bureau news organization, it’s “Hello
diplomacy, so long martyrdom.”
현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영웅적 유연성” 문구 사용은 로우하니 대통령의 화해 정책에 기회를 줄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슐레만의 계획 B(끝까지 서방에 저항하면서 핵무기 등 개발)가 대비책으로 있습니다. 한 종교 학자가 테헤란 부루 신문사에 “안녕, 외교, 너무 오랜된 순교”(그간 이란이 외교, 타협을 하지 않고, 서방에 강력히 대항해 왔으나, 이제 외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After more than three decades of
non-communication, U.S.-Iranian diplomacy is fraught with potential
misunderstanding. The terms of a potential nuclear deal are no great mystery.
Broadly, it would involve capping Iran ’s
uranium enrichment at 5 percent, permitting that enrichment only under intense
international supervision, closing the underground facility at Fordow and
abandoning any plutonium separation plans — in exchange for the progressive
lifting of international sanctions.
30년 이상 대화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간 외교는 잠재적으로 서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잠재적 핵 협상이라는 단어는 큰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포괄적으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5%(핵무기에는 우라늄 농축 90% 이상 필요)에 머물도록 포함하고 있으며, 국제적 엄격한 감시 속에서만 농축을 허용하며, 포도우 지하 시설을 닫고 플루토늄 분리 계획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보상으로 국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입니다.
But the zigzagging nuclear program,
pursued over many years without producing a weapon, has always been political
above all. It is the foremost expression of the Iranian Revolution’s essence:
The rejection of foreign ideology and tutelage after decades of perceived
humiliation by the West. Bomb production was secondary because it was always
fraught with danger for the survival of the Islamic Republic; and Khamenei, as
the “Guardian of the Revolution,” is in a conservative business.
하지만 핵무기 생산없이 수년간 추구해온 지그제그(핵개발 지속, 중단 등 반복) 핵개발계획은 항상 정치적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이란 혁명의 본질의 가장 중요한 표현입니다; 몇십년 동안 서양에 의한 모욕(조롱) 후에 외국 이념과 지도에 대한 거부입니다. 폭탄 생산은 두 번째 문제인데, 그 이유는 이슬람 공화국의 생존에 대한 위험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보호자” 하메네이는 항상 보수적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So the core of the coming U.S.-Iran
negotiation lies in whether Obama can reassure Iran that a nuclear deal does
not equal renewed subjugation or cooption. At the same time Khamenei must
reassure America that Suleimani’s restless pursuit of violent “resistance”
against the West and Israel will cease. A nuclear agreement will make little
sense if it not broad enough to allow eventual U.S.-Iranian cooperation on a
range of strategic issues.
미국과 이란이 협상하기 위한 핵심은 오바마 대통령이 핵 협상이 정복 또는 호선이 아니라는 것을 안심시키는데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메네이는 슐리만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저항하기 위한 폭력에 대한 욕구를 멈출 것이라는 것을 미국에게 안심시켜야 합니다. 핵 협상을 포괄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 이란의 전략적 문제에 대한 실질적 협상을 현실적으로 이끌어 가지 못할 것입니다.
Obama and Rouhani agree that this is no
longer a “zero-sum” world. Both used the phrase. But as the fate of Erdogan’s
“zero problems” foreign policy suggests, good intentions are not enough.
Hussein’s martyrdom is still likely to win out over Hassan’s compromise. But
this is the last best chance for a game-changing accord. The United States and
Iran must seize it.
오바마와 로하이니는 “제로 썸”게임이 더 이상 아니라고 합의했습니다. 둘 다 같은 문구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에르드안 터키 총리의 “문제 없는” 외교 정책의 운명이 시사했듯이(의도와 달리 시리아 등 터키 주변에 많은 문제가 발생), 선의의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후세인의 순교(이란의 대미 강경 입장)가 하산의 협상(미-이란간 타협)을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란과 미국은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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