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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 COBFP 2013-04-06
March 28, 2013
TheEmpirical Kids(Cynic Kids)
경험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
젊은
세대
By DAVID BROOKS
l
단어설명
Occupy movement = “Occupy
movement is (and) international
protest movement against social and economic inequality, its primary goal being
to make the economic and political relations in all societies less vertically
hierarchical and more flatly distributed.” (WIKIPEDIA) 점거운동(Occupy movement)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국제적 항의(시위)이다. 이 행위의 우선 목표는, 모든 사회에 있는 경제적, 정치적 관계가 수직관계에서 보다 평등한 관계로 퍼져나가길 바란다.
Twelve years ago, I wrote a piece for The Atlantic, called “The Organization Kid,”
about the smart, hard-working, pleasant-but-cautious achievatrons who thrive in
elite universities. Occasionally, somebody asks me how students have changed
since then. I haven’t been perceptive enough to give a good answer.
12년전, 저는 The Atlantic지에 명문대학교에서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즐길 줄도 아는 아주 사려 깊은 성취자들에 관한 “The Organization Kid”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가끔 누군가가 저에게 그때 이래 그 학생들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묻곤 합니다. 저는 현재 이에 대한 좋은 대답을 할 만큼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But, this year, I’m teaching at the Jackson Institute for Global
Affairs at Yale, and one terrifically observant senior, Victoria Buhler, wrote
a paper trying to capture how it feels to be in at least a segment of her age
cohort. She’s given me permission to quote from it.
하지만 올해, 저는 예일대 산하 국제문제 Jackson연구소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관찰을 아주 잘 하는
Victoria Buhler가 그녀의 세대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잘 포착한 글을 작성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그녀의 글을 인용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Buhler points out that the college students of 12 years ago grew
up with 1990s prosperity at home, and the democratic triumph in the cold war
abroad. They naturally had a tendency to believe deeply “in the American model
of democratic capitalism, which created all men equal but allowed some to rise
above others through competition.”
Buhler가 꼬집어내길, 12년 전의 대학생들은 1990년대의 미국 내 번영과, 해외 냉전 (구소련과 그 동조세력)시대 싸움에서 민주주의의 승리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자연히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일부는 경쟁을 통해 상위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미국 모델에 깊은 신뢰를 갖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Then came Sept. 11. That was followed by the highly moralistic
language of George W. Bush’s war on terror: “Our responsibility to history is
already clear: to answer these attacks and rid the world of evil.”
그리고 9.11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부시 전 대통령의 높은 도덕적 언어가 뒤따랐습니다: ‘역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명확해 졌다: 이번 테러공격에 대답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악을 제거할 것이다.’
But Bush’s effort to replicate the Reagan war on an evil empire
lead to humiliation, not triumph. Americans, Buhler writes, “emerged from the
experience both dismissive of foreign intervention as a tool of statecraft as
well as wary of the moral language used to justify it.”
그러나 악의 제국(공산주의 종주국인 당시 구소련을 지칭)에 대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전쟁을 흉내 내려는 부시의 노력은 승리가 아니라 모멸감을 가져왔습니다. Buhler는 ‘미국인들은 부시 전 대통령의
9.11 테러전 경험으로부터 국가의 수단으로서 대외개입 정책을 싫어하고, 대외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덕적 용어 사용을 우려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Then came the financial crisis, the other formative event for
today’s students. The root of the crisis was in the financial world. But the
pain was felt outside that world. “The capitalist system, with its promise of
positive-sum gains for all, appeared brutal and unpredictable.”
그런 다음, 오늘날 대학생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인 금융위기(2008년)가 왔습니다.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은 금융분야에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금융분야 이외에서도 느껴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긍정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는 약속을 가진 자본주의 제도가 잔인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Moreover, today’s students harbor the anxiety that in the race for
global accomplishment, they may no longer be the best competitors. Chinese
students spend 12-hour days in school, while American scores are middle of the
pack.
게다가 오늘날 미국 대학생들은 국제 경쟁시대에 더 이상 최상의 경쟁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 대학생들은 학교에서 12시간을 보내는 반면, 미국 학생들은 6시간 정도밖에 학교에서 보내지 않습니다.
In sum, today’s graduates enter a harsher landscape. Immediate
postgrad life, Buhler writes, will probably bear a depressing resemblance to
Hannah Horvath’s world on “Girls.” The hit song “Thrift Shop” by Macklemore and
Ryan Lewis “is less a fashion statement, more a looming financial reality.”
요약하면, 오늘날 대학 졸업생들은 더 어려운 환경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대학졸업 직후 이들은 아마 “Girls”에서 Hannah Horvath’s 세상과 유사한, 암울한 환경을 직면할 것입니다. Macklemore와 Ryan Lewis의 인기 노래인 “Thrift Shop” (중고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좋아하는 내용의 노래)은 “열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제 어려운 경제적 현실을 느끼게 해줍니다”.
Buhler argues that the
group she calls Cynic Kids “don’t like the system — however, they are wary of
other alternatives as well as dismissive of their ability to actually achieve
the desired modifications. As such, the generation is very conservative in its
appetite for change. Broadly speaking, Cynic Kids distrust the link between
action and result.”
Buhler는 Cynic Kids(냉소적인 어린이들, 다시 말해 제목과 같이 경험에서 실망한 청년들을 의미)라고 그녀가 호칭하는 그 그룹이 “기존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는다. –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수정사항(대안)을 성취하기 위한 다른 방법에 대해 경계(조심)를 함과 더불어 자신들의 능력도 믿지 못합니다” 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이(As such), 지금 세대는 변화에 대한 욕구에 대해 매우 보수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Cynic Kids는 실행과 결과에 대한 연관성을 믿지 못합니다.
A Brookings Institution survey found that only 10 percent of young
people agree with the statement, “America should be more globally
proactive.” The Occupy movement, Buhler notes, “launched more traffic jams than
legislation.” The Arab Spring seemed like a popular awakening but has not
fulfilled its promise.
Brookings Institution의 조사에 의하면, 오직 10 퍼센트의 젊은 사람들만이 “미국은 더 글로벌적으로(세계적으로) 상황을 앞서서 주도해야 한다”라는 말을 동의한다고 합니다. 젊은 세대들은 점령운동이 (변화를 위한)입법조치보다 교통혼잡만 더 초래한다고 Buhler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The Arab Spring(아랍의 봄)은 대중적 자각처럼 보였으나 (변화를 위한)약속을 이행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In what I think is an especially trenchant observation, Buhler
suggests that these disillusioning events have led to a different
epistemological framework. “We are deeply resistant to idealism. Rather, the
Cynic Kids have embraced the policy revolution; they require hypothesis to be
tested, substantiated, and then results replicated before they commit to any
course of action.”
내가 생각하기에 특히 정곡을 찌르는 관찰로 보이는 것은 Buhler가 ‘이러한 환상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우리의 다른 인식론적 생각(뼈대)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지금 젊은 세대) 이상주의에 깊게 반대합니다. 차라리,
Cynic Kids는 정책적 혁명을 받아들입니다; Cynic Kids들은 어떠한 행동을 실행하기에 앞서 가설이 실험되고, 입증된 후 결과를 보고 싶어합니다.”
* 지금의 젊은 이들(Cynic kids)은 이상주의, 즉 공허한 약속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며, 어떤 좋은 구상, 계획이 나오더라도, 그 구상 및 계획이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이를 믿고 실제 행동에 나선다는 의미
Maybe this empirical mind-set is a sign of maturity, but Buhler
acknowledges that the “yearning for definitive ‘evidence’ ... can retard
action. ... The multiplicity of options invites relativism as a response to the
insurmountable complexity. Ever the policy buffs, we know we are unable to
scientifically appraise different options, and so, given the information
constraints, we stick with the evil we know.”
어쩌면, 이러한 실질적인 사고방식은 철이 든 신호일 것입니다. 하지만
Buhler는 인정하기를 “확실한 ‘증거’를 갈망하는 것은 실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선택의 다양성이 대처할 수 없는 어려움에 대한 대책으로 상대주의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정책 전문가 조차 우리들이 과학적으로 다른 대안들을 평가할 수 없으며, 정보의 제한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악마와(불확실성) 함께해야 합니다.
She suggests calling this state of mind the Tinder Effect,
referring to the app that lets you scroll through hundreds of potential
romantic partners, but that rarely leads to a real-life encounter.
그녀는 제안하길 이 상태의 마음가짐을 Tinder(부싯깃) Effect라고 부릅니다. 이는 당신이 수백 명의 로맨틱한 잠재적 파트너들을 조사하지만 실제는 거의 만나기 어렵다는 app를 의미합니다.
Buhler’s most comprehensive disquiet is with the meritocratic
system itself. It rewards an obsessive focus on individual improvement: “Time
not spent investing in yourself carries an opportunity cost, rendering you at a
competitive disadvantage as compared to others who maintained the priority of
self.”
Buhler의 가장 포괄적인 불안은 성과주의 시스템 그 자체 입니다. 성과주의는 개인 발전에 대한 강박적인 집중에 대해 보상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투자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야기하는데, 이를 번역하면, (자기자신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 우선순위를 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불이익 있습니다.”
She wonders if the educated class is beginning to look at the
less-educated class — portrayed on TV in shows like “Teen Mom 2” and “Here
Comes Honey Boo Boo” — as a distant, dysfunctional spectacle. She also wonders
if the mathematization of public policy performs a gatekeeper function; only
the elite can understand the formulas that govern most people’s lives.
그녀는 지식인 층이 덜 교육받은 사람들을 – 이들은
“Teen Mom 2”와 “Here Comes
Honey Boo Boo”와 같은
TV쇼에서 묘사된 적이 있음- 멀리 떨어져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공공 정책에서 수학적 요인이 입구(결정 요인) 함수인지 궁금해 합니다; 오직 엘리트들만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그 공식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I had many reactions to Buhler’s dazzling paper, but I’d like to
highlight one: that the harsh events of the past decade may have produced not a
youth revolt but a reversion to an empiricist mind-set, a tendency to think in
demoralized economic phrases like “data analysis,” “opportunity costs” and
“replicability,” and a tendency to dismiss other more ethical and idealistic
vocabularies that seem fuzzy and, therefore, unreliable. After the hippie, the
yuppie and the hipster, the cool people are now wonksters.
저는 Buhler의 현혹적인 글에 많은 반응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힘든 사건들은 젊은 층의 봉기보다는 경험적인 사고방식(결과를 보아야 행동에 나서는 젊은이, 즉
Cynic Kids)으로 회귀를 야기했습니다, 즉 지금 세대들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경제용어인
“데이터 분석,” “기회비용” 그리고 “반복 가능성”을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도전 정신이 사라졌다는 의미). 그리고 지금 세대는 흐릿하고,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윤리적이고, 이상적인 단어를 무시하는 경향도 갖고 있습니다.
Hippi(히피 -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을 주체로 하여 시작된,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후에, yuppie (여피 - 도시나 그 주변을 기반으로 지적인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이) 와 hipster(힙스터 – 최신 정보로 박식한 사람), 지금의 대단한 사람들은 wonksters(일벌레)입니다.
* 지금 세대를 일벌레라고 하는 것은 창조적 생각보다 결과가 명확한 사업에만 열중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9.11 테러, 2008년 금융위기 등에 기인한다고 지적하는 것 같네요.
And,
yes, I gave her an A.
그리고 맞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A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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