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27일 일요일

병자호란 저자: 한명기 출판사: 푸른역사

병자호란

 저자: 한명기 출판사: 푸른역사

 한반도는 기존 제국이 쇠퇴하여 신 제국이 들어설 때마다 늘 위기를 맞았다. 중국의 외교 정책 방향이 ‘도광양회’로부터 ‘화평굴기’를 거쳐 ‘주동작위’가 된 것처럼 신흥 강국 중국은 부상하고 있고 미국은 2008년의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리더십에 큰 타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중립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렇기에 과거에 이와 유사 한 역사적 사례를 찾아보고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병자호란 >>이라는 책은 큰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에서부터 병사호란에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위기 속에 선조, 광해군, 인조라는 3명의 왕이 대를 이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아들로 선조 다음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첩자 이자 차자라는 콤플렉스로 인해 자신의 권좌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여 왕세자 경쟁에 놓였던 영창 대군과 인조의 동생인 능창군을 죽이게 된다. 인조의 아버지이자 광해군의 이복 동생인 정원군 또한 광해군의 의심으로 오래 살지 못하게 되면서 인조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인척들과 주변 사람 들을 동원해 인조반정을 일으키게 된다. 병자호란 시기에 정권을 잡고 있던 인조는 광해군의 난 정을 바로잡겠다며 인조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사람이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며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오랑캐 후금과 화친하여 명나라의 은혜를 배신했기에 반정을 일으켰다고 밝힌다.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공신 계급에 대해 한을 품 은 이괄이 난을 일으켜 수도를 장악함에 따라 파천해야 하는 위기에 놓였고 이괄의 난을 진압한 이후에도 정권 안정에만 급급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불안감으로 인해 그는 국제 정세와 조선의 현 상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그의 집권기 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한반도는 초토화가 되었다. 민생은 더욱 도탄에 빠졌으며 오히려 후금에게 항복하고 무릎 을 꿇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마치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아프리카와 중동의 상황과 비슷하 다. SNS를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려 자유를 얻었다 생각했으나, 차기 정권을 이끌어 나갈 체계 의 미흡으로 오히려 실업률은 늘어나고, 전쟁과 가난 배고픔 속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불 만족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좋으나 더 큰 그림을 그려서 미래를 내다 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번 무너진 탑을 다시 세우는 일은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이 따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광해군이 계속해서 정권을 유지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광해군은 일단 선조때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분조 활동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군량을 모으고 군기 를 조달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전쟁 상황의 대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때의 활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그는 외교적으로 실리외교를 추구하며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정춘신 등의 사절을 보내 떠오르는 후금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여 홍타이지는 조선 강경파인 반면 다이샨은 온건파라는 사 실 등을 알고 있었고 차기 정권의 향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또한 가도에 있는 명의 모문룡이 후금과의 관계에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으며 그의 인품을 미리 파악하고 배척하였다. 이 러한 국제 정세를 인식하였기에 강홍립에게 밀지를 내려 심하전투에서 항복을 할 수 있도록 하였 고, 강홍립으로 하여금 후금의 정보를 더 알아 낼 수 있었다. 만약 광해군이 정권을 유지했었다 면, 남이홍이 죽으며 인조의 기찰로 인해 ‘내가 지휘관이 되어 한번도 습진(진을 치는 훈련)을 해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애통하다’라고 말하는 상황은 안 나오지 않았을까? 또 강화도와 수도 방 어에 급급하기보다는 올바른 군사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랬다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상황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북쪽의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덜 입지 않았을까? 정 말 아쉬운 대목이다.

 인조의 의사결정과 정책 방향을 보면 정은 많으나 겁 또한 많고, 자신의 주관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주관적인 결단력이 없다. 이괄의 난으로 인해 정권 유지에 급급하여 정권 유지를 위해 명나라의 사신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으며, 이 사신들로 인해 국가 제 정에 큰 타격을 입었다. 명 사신 접대를 위해 명 장수에게서 은을 빌려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나 올 정도였으니(1권 p85) 국가 제정 상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자점, 김류, 김경 징 등의 문제를 묵인하였고 청과 싸우자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은 강화도로 들어갈 생각만을 하였다. 지도부가 겁을 먹고 도망치는데 어떻게 전쟁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의 두려움으로 인해 전쟁을 앞두고 군력을 수도와 강화도에만 집중시켜 결국 아무것도 못해보고 청나라에 항복을 하 게 되었다. 그는 국제정세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소인배였다. 결국 인조 는 왕위를 계승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명의 태창제의 급사와 조선의 소현세자의 급작스런 죽음은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명은 결국 누르하치의 공격을 막은 명장 원숭환을 오명으로 죽여버리고 조대 수 같은 충직한 무장도 후금에 항복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명의 공유덕과 경중명 이 185척의 선박과 수만의 병력 그리고 홍이포를 이끌고 후금에 투항하였는데, 인조가 이때 조차 도 세계의 흐름을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 참 아쉽다. 공유덕과 경중명의 투항은 명의 내부 사정 을 잘 말해준다. 이 둘의 투항은 또 다른 의의를 가지는데 그것은 후금으로 하여금 수군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조선이 병사호란을 치르고 나서의 일본의 관계 또한 주목해 보아야 한다. 저자는 일본을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한반도가 대륙과의 관계 때문에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틈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선수(2권 p320)’라고 평가한다. 쓰시마는 조선의 외교적 상황을 파악하여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되고 결국 조선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청과 일본에 많은 물자를 제공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되고 민생은 더 힘들어 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모든 국제관계를 잘 표현하 는 대목이다. 지구 역사상 약국을 무상으로 도와주는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국제 관계는 약육강 식의 사회이다. 현재 중국과 미국, 일본의 국력에 한없이 못 미치는 한국은 이 3나라에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는 현실이긴 하다. 그렇지만 후금이 명을 정벌 시 조선의 침공을 우려했듯이 어느 정 도의 영향력은 행사 할 수 있기에, 이를 이용하여 약국으로써의 위기를 잘 극복하는 해답을 찾아 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복배수적’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는 배와 등, 즉 앞과 뒤 양쪽에서 적이 몰려오는 형국 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한 국이 정면의 중국 대륙과 바다건너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사실을 잘 알 고 있었다. 현재 학자들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평가한다. 실 제로 중국과 일본의 센가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다. 병자호란과 같은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중국과 미국의 리더십 경쟁으로부터 실리를 얻어내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조금 더 넓은 안목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 보고 한국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도광양회: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
화평굴기: 화평하게 우뚝 일어선다는 뜻
주동작위: 제 할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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