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의 한 판결이 화제다. 일란성 쌍둥이와 단기간 내에 성관계를 맺은 여성이 임신하자, 법원이 현재의 DNA 검사 기술로는 친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법적 이슈를 넘어 현대 생물정보학의 실질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동일한 유전자, 과학도 구분하지 못하다
일란성 쌍둥이는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아이의 유전자를 검사해도 두 명의 아버지 중 누가 생물학적 부친인지 판별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기존의 DNA 마커(STR, SNP 등)를 이용한 친자 확인 검사는 개인을 구분하기 위해 유전적 다양성을 활용하는데, 일란성 쌍둥이에게는 이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의 진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통념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의학 기술의 현실적 한계
이번 사건은 법의학 분야에서 오래된 과제를 재조명한다. 친자 확인 기술은 지난 30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이는 '서로 다른 개인'을 구분하는 데에만 최적화되어 있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두 사람을 구별해야 하는 극히 드문 상황에 대비한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고, 비용-효과 측면에서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 법원의 판결은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기술의 '비적용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미래 기술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생식세포계 돌연변이(germline mutation)를 분석하거나 전체 게놈 시퀀싱(Whole Genome Sequencing) 데이터를 극도로 세밀하게 비교하면 이론적으로는 구별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용과 시간이 엄청나고, 임상적 적용은 더욱 먼 이야기다. 또한 표본 채취 시점의 나이 차이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핵심 포인트: 이 사건은 기술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믿음에 경종을 울린다. 과학은 인간이 예상하는 시나리오 중 충분히 자주 발생하는 경우들에 대해서만 솔루션을 만든다.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이를 구분하는 기술 개발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결국 기술의 진보는 선택적이며, 그 선택의 기준은 시장과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는 냉엄한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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